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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최고의 장군 벨리사리우스

유머 2017.11.18 14:35 조회 수 : 40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그 왼쪽이 벨리사리우스.

 

서로마가 476년 거하게 털리면서 망한 이후로 서로마가 차지했던 땅은 여러 이민족들이 나눠먹게됨.

 

 

이탈리아는 동고트가,  이베리아는 서고트가, 아프리카는 반달족이 세운 왕국이 자리잡게 됨.

 

과거의 로마제국의 영광을 꿈꾸던 유스티니아누스는 533년 벨리사리우스를 아프리카로 파견하게됨.

 

벨리사리우스는 530년 다라 전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대를 격파한 전공이 있고,

 

532년엔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니카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좆될뻔한 유스티니아누스를 구한 전력이 있었음.

 

당시 반달 왕국의 영토.

 

반달족들은 희대의 꿀땅이었던 카르타고를 손에 쥐고 있었음.

 

유스티니아누스는 원래 반달족들 끼리 내분을 겪게 만든 후 조공이나 받아낼 생각이었으나,

 

계획을 바꿔 아예 반달 왕국을 조져버리기로 결정함.

 

벨리사리우스는 단 1만 5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아프리카에 상륙한 후

 

10만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던 반달족과 싸움.

 

아드 데키미움의 전투에선 반달족에게 완패를 당했으나,

 

반달족의 왕인 겔리메르가 조카가 죽어서 집중못하던 사이에 전열을 가다듬어 격파하면서 534년 항복을 받아내게됨.

 

 

 

당시의 동고트 왕국의 영토.

 

535년 벨리사리우스는 이탈리아를 지배하고있던 동고트 왕국과의 전선에 투입됨.

 

 당시 동고트 왕국의 병력은 15만명에 달했는데, 벨리사리우스의 병력은 7000명에 불과 했음.

 

게다가 동고트 왕국은 통치를 꽤나 잘하고 있어서 주민의 대다수였던 로마인들이 동고트 왕국을 지지하고 있었음.

 

벨리사리우스는 시칠리아에 상륙해 팔레르모를 함락시키고

 

달마티아 지역에 상륙해 살로나를 빼앗은 문두스와 함께 동고트를 침공함.

 

그러나 동고트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음.

 

문두스는 동고트의 지원군에게 역관광당해 전사하고, 제국군은 살로나에 고립되고,

 

벨리사리우스 본인은 아프리카에 소요사태가 일어나 진압하러 뱃머리를 돌려야 했었음.

 

536년 유스티니아누스는 지원군을 보내서 달마티아 지방을 수복하고,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벨리사리우스는 이탈리아

 남부에 상륙해, 동고트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을 진압하면서 나폴리까지 진격함.

 

수도교에 병사들을 잠입시켜서 나폴리 주민들을 압박한 벨리사리우스는 항복을 받아내고 약탈, 방화, 학살을 벌임.

 

이후 로마까지 점령한 벨리사리우스 였으나 동고트의 왕 비티게스가 4만5천의 병사를 이끌고 남하함.

 

수적으로 열세였던 벨리사리우스는 로마로 후퇴해서 동고트와 내통하는 교황 실베리우스를 폐위하고 추방해버림.

 

비티게스는 1년간 로마를 포위해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벨리사리우스는 죽을뻔 위기도 겪는다 ㅠㅠ

 

그러나 결국 벨리사리우스는 로마를 사수하는데 성공하고, 퇴각하는 동고트군을 기습하여 궤멸시킴.

 

 이후 벨리사리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지원권을 요청했고, 황제는 나르세스라는 환관을 파견함.

 

환관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나르세스도 역시 뛰어난 장군이었음.

 

이탈리아를 노리고 쳐들어온 프랑크족을 박살내고 밀라노까지 수복한 벨리사리우스는 이탈리아  북부를 하나씩 장악해나감.

 

이거 좆됬다 싶은 생각이 들은 비티게스는 벨리사리우스에게 이탈리아의 왕과 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는건 어떻겠냐며 제의함.

벨리사리우스는 이를 수락하고 비티게스는 로마군을 라벤나로 들였으나 이건 벨리사리우스의 함정이었다!!

 

벨리사리우스는 동고트의 주요 인사를 감금시키고 라벤나를 함락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 승전보를 울린다.

 

불쌍한 비티게스는 콘스탄티노플로 끌려가 그자리에서 하늘나라로 사출당하게 됨.

 

그러나 이 일은 나날이 인기가 좋아지는 벨리사리우스에 대한 황제의 두려움에 결정타를 날렸고,

 

고트족들의 적개심도 더 커지는 결과를 낳게 됨.

 

 

벨리사리우스가 왕의 자리를 제위받았다는 사실에 크게 빡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벨리사리우스를 사산조와의 전선으로 보냄.

 

벨리사리우스는 시리아를 두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힌샤인 호스로 1세와 맞붙게 된다.

 

벨리사리우스의 군대는 급여도 제대로 못받고 정예병도 아닌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음.

 

그래서 우리의 벨리사리우스는 페르시아와의 정면 싸움을 피하고 병력을 한곳으로 몰아서 대군처럼 보이게 했음.

 

이걸본 호스로 1세는 쉽게 군대에게 명령을 내리지 못했고 사신을 보내서 살피고 오게 했는데,

 

사신도 속아넘어가서 '지금 돌아가시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보고함.

 

결국 벨리사리우스는 전투 없이 호스로 1세를 돌려보내는데 성공.

 

그런데 그 해에 제국의 영토에 페스트가 번지기 시작함.

 

도시화율이 높았던 로마 제국에게 페스트는 대재앙이었고, 유스티니아누스마저 감염되서 오락가락하는 상황까지 옴.

 

동방에 파견되있던 장군들 사이에선 황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장군들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콘스탄티노플에서 후계자를 정하면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함.

 

근데 이때 벨리사리우스가 황제를 비난하는 말까지 해버림.

 

이 소식은 황후 테오도라의 귀에 들어갔고, 장군들은 투옥되고 벨리사리우스는 재산과 사병을 몰수 당함과 함께 사령관 지위가 박탈됨.

 

벨리사리우스가 살아남을수 있었던건 와이프인 안토니나가 황후 테오도라의 베프였기 때문.

 

이때 이탈리아에선 토틸라라는 유능한 지도자가 나타나 고트족을 통합하고 재정복을 하기 시작함.

 

 

동고트 왕국 최후의 불꽃이었던 토틸라.

 

토틸라가 이끄는 동고트군은 로마, 라벤나 같은 일부 거점을 제외하고 이탈리아를 재점령하는데 성공함.

 

546년 유스티니아누스는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이탈리아로 파견함.

 

그러나 벨리사리우스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해있던 황제는 변변한 자금도 병사도 지원해 주지 않았고,

 

벨리사리우스가 '제발 돈하고 병사좀 보내주세요 ㅠㅠ'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그제서야 몇달 뒤에 약간의 병력을 보냄.

 

당시 토틸라는 로마로의 식량 유입을 끊어 항복을 받아내려던 상황이었음.

 

벨리사리우스는 함대를 이끌고 티베르 강을 거슬로 올라가 로마를 구해려했으나,

 

로마의 지휘관인 베사스가 명령을 듣지 않아 실패하고 로마를 함락당하게 된다.

 

547년에는 토틸라를 물리치고 로마를 다시 점령하나 지원은 오지 않았음.

 

이때 유스티니아누스의 견제는 조선의 선조보다 심했을 정도.

 

최후의 방법으로 벨리사리우스는 아내 안토니나의 영향력을 이용해 지원을 요청하나,

 

549년 황후 테오도라가 암으로 사망하자 벨리사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옴.

 

토틸라는 벨리사리우스가 이탈리아를 떠나자 다시 손쉽게 로마를 재점령함.

 

나르세스는 벨리사리우스를 대신해 이탈리아 전선의 총 사령관이 되는데,

 

벨리사리우스가 받을수 없었던 대규모의 지원군을 얻어내며 552년 타기나이 전투에서 토틸라를 박살내는 업적을 세움.

 

나르세스는 이후 고트족을 알프스 너머로 몰아내며 이탈리아를 완전히 수복함.

 

벨리사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자 황제는 따뜻하게 맞아 주고

 

수도에 금박을 입힌 동상을 세워주면서 제국 근위대 사령관으로 임명함.

 

559년 벨리사리우스는 불가르 족을 상대로 승리한후 은퇴하게됨.

 

562년에는 모함을 받아 징역형이 선고되었으나, 유스티니아누스는 곧 벨리사리우스는 풀어줌.

 

565년 로마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장군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고 유스티니아누스도 몇달뒤 세상을 떠남.

 

벨리사리우스의 금동상은 11세기까지도 콘스탄티노플에 서있엇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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